키르키즈스탄 소식

제목  회개와 선한 행위에 대한 고찰( 이번 추석에 메일로 받은 내용입니다.)
이름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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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선한 행위에 대한 고찰



이슬람 종교에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회개와 선한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이 둘과의 논리적인 관계는 서로 이율 배반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를 통한 구원을 주장할 때, 그들은 하나님이 한 없이 자비로우신 분이라서 언제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고, 한편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적 의무를 지키고, 악보다 선한 행위를 더 많이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서로 모순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회개를 통한 용서는 인간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값없고 대가 없는 구원이다. 반면에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대가 없는 용서가 아닌 자신의 전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사실 회개와 선한 행위는 모두 필요한 것이며, 그것들 자체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선하심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에 서로 모순되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의 예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우심의 조화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 모든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받아들이시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세우신 의로운 율법에 의하여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과 형벌을 내리셔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신다면 역시 자신이 세우신 의로운 기준이 되는 율법에 근거하여 구원하셔야 한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더 이상 교제를 할 수 없게 되고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에게는 사실상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만들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담은 창조 이래 유일한 한 가지 불순종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면전과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죄를 범한 적이 없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그의 이전의 오랜 기간의 거룩한 삶과 단 한 가지의 불순종의 저울질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가 범죄 후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후 자신이 온 인류에게 저지른 어마어마한 결과에 대해 회개한다고 해서 이미 잃어버린 낙원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선한 행위와 구원과의 관계

선한 행위에 대해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선한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을 복종하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복종하는 한 그 자체로 선한 존재였다. 그리고 인간의 선한 행위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서 사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며,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복종하지 않고 행해지는 선한 행위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닮지 않은 선한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삶 자체는 하나님의 형상이어야 하며, 하나님을 닮은 선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불복종은 단지 그가 단 한 가지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잔인하게 자신의 의로우심을 기준으로 하여 심판하시고 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선한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와 타락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리스도인이든 불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미신을 믿는 존재이든, 심지어는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모두가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 그것은 물론 구원을 받기 전이든, 구원을 받은 이후이든 하나님의 선한 형상인 인간이라면 마땅히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



무슬림이 말하는 회개와 기독교인이 말하는 회개의 차이점

그럼 무슬림이 말하는 회개와 기독교인이 말하는 회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슬림들이 말하는 회개란 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려하지 않고 회개를 하여 용서를 받기 위한 아무런 근거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인 실수이다. 이미 범죄한 죄인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결정하시고 형벌을 내리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라면 당연히 용서를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과 자비가 많은 거룩하고 의로운 심판장이신지를 다른 방법으로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사랑과 자비를 모두 만족시키시는 방법으로 죄인인 인간을 대신해서 형벌을 받고 죄의 대가인 죽음을 대신 담당하는 속죄 제물을 근거로 하여 인간이 구원 얻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대신 속죄 제물에 형벌을 내리셨기 때문에 죄인을 용서하시는데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증명하셨다. 하나님의 죄인의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즉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시고 그를 우리 모든 죄인을 위해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나를 위해 나를 대신해 형벌을 받고 죽으신 구주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믿는 모든 자’에게 죄로부터 용서해 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담이 잃어버렸던 영생을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다시 얻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요 길이다. 그러므로 무슬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과 구주로 소유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회개하고 용서 받을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셈이다.



구원이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죄로 인해 타락하고 형벌을 이미 받은 현재의 상태, 그리고 앞으로 지옥에 들어가게 될 처지와 형편에서 최초 아담이 가졌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죄는 인간에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파괴를 가져왔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 질서의 파괴,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 인간 상호 관계와 자연계와의 관계의 파괴 등 죄의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에게 복종하든지 복종하는 자의 종이 되는데, 하나님께 복종하는 대신 사탄에게 복종함으로써 사탄의 모든 악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세상에서의 저주와 고통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벌이 뒤따른다. 구원이란 이러한 모든 전 상태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죄의 용서와 형벌을 통과하는 것, 즉 하나님의 법정을 통과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가능해진다. 그 하나님의 법정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통과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형벌인 죽음을 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선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지 않고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생명의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고 그와 함께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범죄 전 아담이 하나님과 가졌던 생명의 교제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입양된 그리스도인은 아담이 불순종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생명의 복된 관계를 또 다시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다.



결론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지혜롭게 설명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다만 이슬람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선한 행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룰 때, 구원을 위해 선한 행위가 선행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은 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전적으로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선한 행위의 문제는 시간적으로 그것이 구원의 이전이냐 이후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하나님은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셨다)이고 인간의 당연한 의무의 문제이다. 단지 자연인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며 사는 것이 현실이며, 반면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전 인생과 삶의 전영역에 걸쳐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위에서 고찰한 내용은 이전의 기독교 사상과 엄청난 차이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차이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를 더 명확하고 확신 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2007-09-27 06: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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